행복한 집짓기의 경험을 나누는 충주 gogo하우스

 

입주한 지 3주밖에 안 된 집에 초대를 받았다. 독자 이강휘 씨가 설계부터 준공까지 1년에 걸쳐 지은 집. 큰 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설계ㆍ시공자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지은 고고하우스는 이제 그의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행복한 집짓기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는 그를 통해, 오랜만에 집의 진정성을 마주했다.

 

↑ 한창 뛰어놀 나이의 4살 아이와 함께 한 부부. 주택으로 이사하고 나선 꼭 필요한 것들만으로 심플하게 살고자 마음 먹었다.

 

 

↑ 거실과 주방 매스는 정남향으로 약간 비틀어 뒷마당을 안는 형국이다.

 

↑ FRONT ELEVATION

 

↑ LEFT ELEVATION

 
최근 지방 소도시 아파트 값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오히려 아파트 대신 도심형 전원주택을 택하려는 젊은 층의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면 땅을 사고 집을 짓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니, 아이가 있는 가족에겐 주택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본지의 독자 이강휘 씨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가족 모두가 캠핑 같은 야외 활동을 너무 좋아해요. 또, 아이가 점점 커 가면서 하루빨리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집을 짓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먼 이야기 같고 두렵기도 했는데, 막상 도전해 보니 터널을 하나씩 통과하는 성취감이 또 있더라고요.”

 

↑ 주변에 하나둘씩 집이 들어서고 있는 충주 전원주택지. 그 안에 강휘 씨 집은 군더더기 없는 젊은 감각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 1층은 현관부를 중심으로 우측은 안방, 좌측은 주방과 거실의 오픈 공간으로 배치했다.

 

↑ 건축주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싱크대에 테이블 의자 세트

 

 

충주 시내에서 차로 5분 거리, 도심 풍경이 산과 녹지로 바뀌는 경계에 이강휘 씨의 집이 있다. 80세대가 넘는 대규모 주택 단지는 남은 토목 공사로 분주한데, 그의 집은 벌써 준공에 입주까지 마치고 나 홀로 유유자적하다.

강휘 씨는 땅을 먼저 마련하고 나서, 설계에만 꼬박 6개월의 시간을 쏟았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취합•선별하고, 직접 캐드를 만지며 집을 그려 나갔다. 아내와 의견을 조율하며 틈틈이 수정한 도면은 건축가를 만나 구체화되었다. 설계를 맡은 황영환 건축가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에 대해 각각의 장단점들을 설명하고, 강휘 씨 가족이 정말 원하는 집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젊은 사람은 비싼 옷을 입어서 멋진 것이 아니라, 젊음 그 자체의 풋풋함이 좋은 것이죠. 강휘 씨네 집 역시 잔 장식들을 배제하고, 생김새 자체로 멋지고 개성 있는 집을 짓고 싶었어요. 집의 우선적 가치는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다는 그 안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건축가의 말대로 집은 30대 초반 부부의 스몰하우스를 콘셉트로 설계되었다. 109평 부지에 건물은 29평 연면적으로 세우고, 마당은 쓸모없는 땅이 없도록 공간마다 주제를 담았다. 집은 도로 전면을 향해 긴 축으로 이어지는데 군더더기 없는 매스는 덩어리의 비례와 배열만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거실과 주방부 매스를 정남향으로 약간 틀어 뒷마당을 감싸 안는 형태를 취했다. 덕분에 더욱 아늑하게 조성된 뒷마당은 필로티와 그늘이 있는 데크를 두고, 측면에 아이를 위한 모래놀이터를 마련했다.

집은 친환경성과 단열성을 고려해 경량목구조 방식으로 시공되었다. 외부는 벽돌과 스터코플렉스를 조합해 마감하고, 필로티 하부는 루나우드로 시공해 목재의 따뜻한 이미지를 더했다. 전체적인 건축의 외부 이미지는 실내에 그대로 들여왔다. 시각적인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1층부터 2층까지 자연스러운 선이 이어지고, 거실과 주방을 오픈시켜 열린 동선으로 만들었다. 창은 각각의 공간에서 내다보이는 뷰를 신중히 생각해 배치하고, 크기나 개폐 방식 역시 공간 특성에 따라 달리 했다. 설계 단계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기에 실제 공사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 10월에 태어날 딸아이를 위해 사랑스러운 색으로 마감한 방

 

↑ 2층 서재는 추후 자녀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 2층에서 내려다 본 거실 모습. 바닥 면적은 20평이지만 거실과 주방을 오픈하고 적절한 창을 배치해 훨씬 개방감이 있다.

 
“단독주택 중에서도 특히 목조주택은 빌더의 역량에 많이 기대야 하는 집이에요. 설계자 입장에서 정석을 지켜 시공하려는 분을 찾아 인터뷰와 답사를 다니고, 그렇게 결정한 빌더에게 삼고초려해 현장을 맡겼지요.” 덕분에 강휘 씨는 현장이 진행되는 동안, 새집에 들여놓을 가구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원목으로 거실장과 싱크대를 만들고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를 위해 많은 짐을 버렸다. 꼭 필요한 것들로 단출하게 꾸민 집은 가족의 생활 자체를 심플하게 바꾸고 있다. 강휘 씨는 집 짓는 모든 과정에 ‘선택과 집중’이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였다고 말한다.

 

↑ 집의 뒷마당은 전면과는 또 다른 표정이다. 필로티 아래 그늘과 낮은 데크, 앞으로 작은 텃밭이 있는 안락한 공간이다.

 
마당이 있는 집은 가족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물했다. 새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아이는 아파트 근처만 가도 ‘우리 땅으로 가자’고 조르고, 부부는 마당 있는 집에서 해보고 싶던 일들을 하나둘 실천하고 있다. 캠핑장을 찾지 않아도 집은 휴식처로, 놀이터로 매일매일 변화하고 있다.

건축은 공학이 아니라 인문학일 수 있다. 최고로 행복하려고 집을 지으면서 그 과정이 불행하다면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강휘 씨는 어쩌면 평생 한 번 밖에 없을지 모를 내 집 짓기의 순간을 최고로 즐기며 보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살고 있다.

 

↑ PLAN – 1F

 

↑ PLAN – 2F

 


<건축주 이강휘 씨가 전하는 집짓기 후기>

“로또 맞아야 집 짓는 줄 알았어요”

 

 

“아빠 여기 어디야? ” “응, 우리가 여기다 집을 지을 거야! ” 이렇게 마당이 있는 집짓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30대의 평범한 가장인 나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복권에라도 당첨되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그 꿈을 저만치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아파트에 살던 지난여름, 네 살배기 아들은 그 자유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7층 마룻바닥을 쿵쾅 거리며 뛰어 다녔다. 나는 그날도 언성을 높이며 “한결아, 그만 뛰어” 하고 아이를 다그쳤다. 이내 돌아서서 후회를 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게 되었고 아내와 상의한 후 지금 살고 있는 땅을 만나게 되었다. 막상 결의에 차서 일은 저질렀지만 너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건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계가 무엇인지, 허가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겐 집짓기가 마냥 두려움으로만 다가왔다.

특히 전 재산을 걸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야 하는 가장으로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건축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천천히 터널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왜 단독주택에 살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답을 찾아 갔다. 집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당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건축사와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거실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당에서는 무엇을 할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수정하기를 6개월여 지났을 무렵, 드디어 언 땅이 녹은 올해 3월 우리는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수많은 결정과 선택에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아낌없이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집짓기는 머리가 아니고 몸으로, 마음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행위에는 손익의 계산보다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할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가 바라는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라 믿는다.

이사를 한 이후 우리 가족은 주택에 가면 해봐야지 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작고 소소한 것들이지만 이들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내가 생각하던 그 이상이다. 거실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마당에서 흙을 묻혀서 들어오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꿈을 꾸는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다.

“꿈이 있다면 실천해 보세요.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면 누군가가 분명히 그에 응답해 줄 겁니다. 그리고 즐기세요. 즐기는 사람에게는 못 이기는 법이지요.” 우리 가족에게 큰 행복을 선물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출처 – 월간 전원속의 내집

북유럽의 전원주택

 

                                        무더운 여름, 시원한 여름을 보낼 방법이 있을까요?

 

가만 있어도 후끈 달아 올라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잘 되질 않네요.

 

선풍기도 없고, 에이컨도 없던 시절엔 어떻게 여름나기를 했는지…^^;;

 

 

집마다 구조에 따라 여름나기가 수월하기도 할텐데요

 

예전엔 대청 마루에 앉아 있음 한낮 더위에도 바람이 솔솔 불어와

 

가만 있음 덥지 않게 느껴졌던거 같아요.

 

 

북유럽 전원주택 마당 예쁜집 구경하기 ~♪

 

 

 

오늘 소개해들 집은 북유럽 스웨덴에 있는 2층 단독 주택으로

 

이쪽 저쪽 시원스럽게 낸 창문으로 맞바람이 들어와

 

한여름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당 있는 예쁜집으로

 

바베큐 파티도 하며 즐겁게 여름나기를 할 수 있는 북유럽 스웨덴의 주택이에요~
함께 즐감하며 더운 여름을 이겨내보아요~^^

 

 

 

* 북유럽 전원주택 마다 예쁜집 전경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과 휴식을 얻어 힐링이 될 것만 같은 정원이에요.^^

 

 

나중에, 나중에 ~ 이런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

 

넓직한 테이을 두고 한켠에서 가꾼 각종 채소들로 식탁을 꾸미고

 

예쁘게 가꾼 야생화를 꺾어 맑고 투명한 유리병에 꽂아 테이블 세팅을 하고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까운이들과 포트락 파티를 즐겨보고 싶어요.

 

 

 

 

 

 

 

 

 

 

사계절 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는 주방이에요.

 

 

방마다 커다란 창문으로 개방감으로 사계절 청량감을 주는 북유럽 인테리어.

 

깔끔한 화이트 주방에 짙은 원목으로 싱크대 상팜을 마감하여

 

내추럴한 분위기로 고즈넉한 안정감이 주방을 훨씬 돋보이게 하는거 같아요.

 

 

 

 

있어 창문이 있기에 개방감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북유럽인테리어에요.
짙은 원목톤의 가구와 바닥재로 고즈넉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 특징.

 

 

 

 

 

 

하얀 식탁에는 하얀 의자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진

 

세트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주방과 다른 모습이에요.

 

식탁의 구성도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네요.

 

 

흰 테이블에 각기 다른 의자를 놓고 사용하는데도 촌스러워 보이거나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민트색의 콘솔과 잘 어우러진 컬러가 밋밋한 주방 공간에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안정감이 느껴지는 침실이에요.

 

내추럴한 바닥에 화이트를 기본 베이트로 꾸며진 침실 인테리어는

 

특별한 장식이나 가구가 아니더라고 스타일리쉬한 느낌으로
공간을 깔끔해 보이게 하여 많은 북유럽 인테리어에서 볼 수 있는 인테리어중 하나에요.

 

 

 

우리 생활에도 잘 어울려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인테리어 같아요.^^

 

 

 

 

 

 

 

크고 널직한 소파로 편안해 보이는 거실

 

 

내추럴 소재의 바닥과 잘 어울리는 빈티지한 색감의 러그로 포인트를 주고

 

푹신한 패브릭 소파로 릴렉스함이 느껴지는 거실 인테리어 공간이에요.

 

 

한때는 패브릭 소파의 세탁 불편함으로 가죽 소파만 고집할 때가 있었는데

 

패브릭 소파를 쓰고 부터는,

 

 

 

원단에서 주는 편안함과 촉감이 좋아 다시는 가죽 소파를 쓸 것 같지가 않아요.

 

 

 

 

 

 

 

화이트에 블루 만큼 청량감을, 깔끔함을 주는 색상 대비가 있을까요?^^

 

그냥 보기만 해도 시원해보이는 욕실 공간 역시

 

 

 

별다른 장식없이 타일 소재만 가지고도 충분한 인테리어 역활을 하는거 같아요.

 

 

 

 

 

제가 꿈꾸는 그런 정원의 모습이 여기 있었어요.^^

 

자로 잰듯이 가꾼 정원보다는 편안함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모습의 정원.

 

 

오랜세월 주인과 함께한 손대묻은 가구가 편안히 놓여 있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책도 보고, 차도 마시며 광합성까지 즐길 수 있는 집.

 

 

 

굳이 예쁜 카페를 찾아 나서도 되는 그런 집의 모습을 늘 꿈꿔요.^^

 

 

 

 

 

 

 

 

예전에는 1층은 시끄럽고 어둡고, 최상층은 너무 더워

 

아파트나 빌라에서 가장 저렴한 층으로 선호도가 낮았던 걸로 알아요.

 

 

그래서 저 역시 늘 로얄층이라고 하는 것만 골라 골라 이사를 다녔는데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개인 사생활이 보장 될 수 있도록 1층에 정원수를 심어

 

마치 내집 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최상층은 복층으로 설계하여 다른 집과 다른 구조로 공간을 넓게 활용하게 짓더라구요.

 

 

그렇다보니 늘 꽃가꾸기를 희망하는 제게는

 

지금 살고 있는 같은 아파트라도 1층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출처 : 산골전원주택이야기

건축가가 직접 지은 바람이 통하는 집

 

 

↑ 쌍둥이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개의 작은 중정을 내부에 품은 한 채의 주택이다.

 
이유 없는 공간 하나 없고, 적절하지 못한 창 하나 없다. 구성원의 행동과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공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자 온 힘을 다한 건축가의 노력이 곳곳에서 읽히는 주택, 방하착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아이가 생기고, 아파트에서 경험할 한정적인 공간이 안타까웠던 부모의 마음이 그 첫 단추였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본 광경,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찾아 헤맸던 아지트,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그 감각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건축가 정만우 씨의 집, 방하착(放下着)이 지어진 이유다.

 

 

집의 건축주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욕심을 버리면 거짓이 되는 명제다. 적어도 이 집에서는 그렇다. 하루 만에 뚝딱 완성된 남편의 기본 계획안을 받아들고 아내는 “이게 다예요? 몇 가지 더 제안해봐요”라며 어리둥절해했다. 땅을 사둔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어찌 된 영문인가 하니 시간이 날 때마다 그 혼자 몇 번이나 땅에 와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생각했단다. 남사면 언덕 위에서 보이는 경치, 동서남북 어떤 모양으로 창을 내서 어떠한 풍경을 집 안으로 들일까 하는 깊은 고민은 중정을 가운데 품어 바람이 통하는 지금 집의 콘셉트로 정리되었고, 자잘한 변화와 수정을 거쳐 지금의 집 모양으로 완성됐다. 그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었다.

진입로는 북쪽에, 남쪽으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그리고 서쪽에는 인도가 있는 3면이 도로로 둘러싸인 땅이다. 이런 설계상의 이점으로 이 집은 과감하게도 북쪽으로 건물을 붙이고 남쪽의 언덕을 병풍 삼은 아늑한 마당을 만들었다. 남북방향으로 길어진 실내에 두 개의 미니 중정을 만들어 바람길을 내고 1층은 모이는 공간으로, 2층은 흩어지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구분지었다. 중정을 중심으로 실을 배치하고 연결하고 나니 북쪽에서 보는 건물은 자연스레 두 동의 쌍둥이 주택처럼 보인다.

 

↑ 마당은 아파트에 살다 온 가족이 이웃의 시선을 피해 편안하게 빨래도 널고 뛰어 놀기도 하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 실내로 진입하는 현관에는 차분한 컬러의 중문을 달았다.

 

↑ 북측으로 난 진입로로 주차장과 현관이 자리한다.

 

↑ 주변 집과는 다르게 이 집은 마당이 남쪽으로 나 있다. 여름철 남쪽 언덕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서로 관통되는 창을 통해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부 벽 한쪽에 책꽂이를 만들고 창문과 걸터앉을 공간을 적절히 배치해 아이들의 흥미를 돋웠다.

 

↑ 아일랜드 형 주방과 식당, 야외 데크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다. 주방에서는 중정 창 너머로 아이들이 늘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 집은 ‘숨 쉬는 집’이에요. 가운데 중정만 열어두면 바람이 사통팔달로 통해서 문과 거실 창을 모두 닫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거든요.”

신기하게도 아내 윤정 씨의 말대로 진짜 그렇다. 중정은 외부로 큰 창을 내지 않아도 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건축적 장치가 된다. 도시에서 살다가 외곽 택지지구로 옮길 때 가장 염려되던 치안 문제도 경비업체의 힘을 빌리기 전에 설계에서 한 번 잡은 셈이다. 남편 만우 씨는 이 작은 마당에서 물고기 밥 주고, 총총히 박힌 별을 보는 여유가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며 고백했다.

“늘 ‘이 공간에서 느끼는 건 무엇이겠구나’라는 생각들로 설계를 해왔지만, 저도 실질적으로 그 곳에 사는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나 봐요. 중정의 연못과 2층의 욕실, 안방의 창 너머로 보이는 공간에서 느끼는 감성은 제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좋은 것이더라고요. 그저 하늘만 쳐다봐도 좋은, 그런 좋음이요.”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공간에는 가족의 행동과 기분이 담겨있다. 2층의 창은 서쪽 해질 때의 풍경, 동네의 탁 트인 길,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적절한 크기로 나 있었고, 중정 너머로 어디서든 아이들을 볼 수 있게끔 아내의 주방을 배치하고 세탁실과 드레스룸 등의 유틸리티 동선을 편리하게 이었다. 아이들은 잠들기 전, 또 하나의 미니 중정으로 연결된 창문을 향해 아빠를 소환한다. 그는 서재에서 아이들의 부름을 듣고, 아이방에 올라가 동화책을 읽어준다. 2층 화장실에서는 석양이 가장 예쁘게 보이고, 해가 지는 시간이면 안방에 길게 난 창으로 복숭아나무가 심긴 산이 액자처럼 들어온다. 편리함만을 고려해 만들어진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집이다.

 

↑ 실내는 중정을 중심으로 ‘ㅁ’자 구조로 되어 있다. 거실은 아이들을 위해 돌아가는 참을 가진 계단과 함께 세미복층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서재는 집의 북쪽 소로(小路)에 면해 있어 생활과는 분리된 영역이다.

 

↑ 아이들의 놀이방에는 각종 책과 장난감이 가득하다. 이곳에 낸 창문 또한 높이와 비례를 고민해 만든 결과물이다.

 

 

또 하나의 중정은 서재에서 밖으로 출입할 수 있는 동선일 뿐 아니라 세탁실과 다용도실 등 유틸리티 공간과 연결되어 빨래도 널 수 있는 야외공간이다.

건축가로서 어느 한 가지 구조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집인 방하착은 난연패널(샌드위치패널)과 철골로 지었다. 단열재로 이루어진 이 패널을 H-BEAM 안팎으로 붙여 이중 벽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자 약하지는 않은지 걱정한 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H-BEAM이 구조가 되기 때문에 철골구조인 셈이에요. 바깥쪽으로는 15㎝ 패널을, 안쪽으로는 10㎝ 패널을 대면 가운데 H-BEAM 두께만큼의 공기층이 생기지요. 제한된 예산으로 따뜻한 집을 짓는 방법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우리집으로 진짜 그런지 실험해보는 중이에요(하하).”

공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고, 이중 벽체 분량의 재료비가 추가로 들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만큼 싸지는 않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패널 자체가 단열재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가 이음과 열교, 기밀을 잡아 줄 수만 있다면 괜찮은 단열성능을 낼 수 있는 재료임은 틀림없다. 한여름에도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면 시원하고, 지난 3월 꽃샘추위 때는 보일러를 2시간만 돌렸음에도 집 전체가 포근해지는 것을 가족이 몸소 경험했다. 콘크리트보다는 가벼운 구조이기 때문에 묵직함은 덜하고, 울림이나 가벼운 느낌이 든다며 단점을 나열하는 그이지만, 현장에서 그 부분은 목조주택과도 다를 바 없는 미약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LAN-2F

 

↑ PLAN-1F

 

↑ 집의 중심인 중정을 통해 바라본 실내 모습. 이중 유리와 이중 창으로 내•외부의 온도차를 잡았으며, 벽체 두께는 340㎜에 달해 단열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 식당과 야외 데크를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해 언제든지 주택의 마당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아빠! 이제 아랫집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안 해?”, “뛰어 놀아도 되는 거야?” 이사 오기 전날 두 아이가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이제는 약속이라도 한듯 ‘요이 땅!’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뛰노는 아이들 이마에 맺힌 송골송골 땀을 식혀줄 바람도 집 안팎 곳곳에서 불어온다.

건축가이자 건축주인 정만우 씨의 삶의 화두는 ‘집착을 내려놓으라(放下着)’다. 열의에 가득 차 혈기 왕성했던 젊은 날, 어느 스님이 주신 이 문구는 그대로 집의 이름이 되었다. 집의 이름을 멋들어지게 지으려던 고민도 하나의 집착이었음을 깨달은 그의 의지를 담아, 방하착은 이제 대문 옆 골목을 밝히는 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

 

 

 

출처 : 월간 전원속의 내집

책과 음악이 머무는 공간, 완벽한 조화의 주택

 

건축가와 건축주, 시공자의 균형이 상식적인 수준의 집을 만들어냈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건축주의 유려한 핸들링이 있었다. 그의 지혜를 읽어보는 시간. ‘제주도’ 섬 지역의 특성도 장애가 아닌 즐길거리가 되었던, 지혜로운 집짓기의 표본을 보자.

 
[HOUSE PLAN]
대지위치: 제주시 애월읍
대지면적: 991.74㎡(300평)
건물규모: 지상 2층
건축면적: 85.79㎡(25.95평)
연면적: 94.18㎡(28.49평)
건폐율: 8.65%
용적률: 9.50%
주차대수: 1대
최고높이: 6.3m
공법: 기초 – 철근콘크리트 줄기초
        지상 – 경량목구조
구조재: 북미산 SPF
지붕재: 컬러강판(로자)
단열재: 그라스울 단열재
외벽마감재: 오메가플렉스, 적삼목
창호재: 독일식 ENSUM창호

 

↑ 안마당을 둘러 데크를 만들어 주택의 위요감을 더했다.

 

↑ 앉아서 쉴 수 있는 움푹 파인 툇마루는 물확을 설치해 발을 담그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다.

 

↑ 건물 배면에서 바라본 안정적인 형태의 주택 외관은 제주 한라산과 오름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 실내로 막 들어서면 좌식생활을 할 수 있는 평상과 입식 부엌이 펼쳐진다.

 
토지의 ‘형질변경’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건축주였지만, 자신이 원하는 ‘거주’에 대한 생각만 명료하다면 그 다음은 상식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풀어나가면 되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은 즐거운 ‘토론’의 장이 되었다. 공사견적을 받을 때, 초안보다 5천만원 가량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공회사의 인테리어 재료 변경 제안 덕분이었다. 자작나무를 다루는 시공사의 노하우를 인정한 건축주의 빠른 의사결정이 수반되었다. 어린아이가 없어 친환경 재료에 민감하지 않은 건축주의 상황을 고려하여 데크재와 친환경페인트도 방부목과 실크벽지로 변경되었다. 건축가의 의도대로 짜인 공간과 뼈대인 구조체, 단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창호 등 집의 디자인과 성능에 손대지 않은 채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설계 의도는 명확하다. 오밀조밀 위요감있는 공간을 이곳저곳에 배치하려는 건축가의 계획대로 응접실 역할을 하는 평상, 편백으로 둘러싸인 1인용 음악감상실, 그리고 복도를 이용한 짧지만 강력한 책의 길은 이 집의 백미다. 이곳저곳 욕심을 부리다 보니 건축 면적이 기존 20평보다 약 8~9평가량 늘어났지만, 그만큼 폭 싸인 공간이 늘었다며 즐거워하는 건축주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거리가 멀어 건축가가 늘 현장에 붙어있을 수 없었기에 현장에서의 의사결정은 건축주와 시공자에게 맡겨진 상황이었다. 공사과정 중 분쟁은 어느 현장에나 생기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공간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어 만든 거실 위 다락 부분. 이곳에 오르는 사다리 디자인을 두고 원래 디자인과 틸트다운 방식 두 가지를 두고 건축가와 시공자 사이에 이견이 발생했다. ‘일주일만 생각해보자’며 머리를 싸맸던 건축주는 결국 건축가의 편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없어도 될 공간이었지만 재미를 위해 만든 공간이기에 건축가의 의도를 존중하기로 했지요. 무엇보다 저곳에 오를 사다리를 내리기 위해 매번 평상에 있는 책을 치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싶었고요.” 부인이 집에 없을 때는 항상 그곳에서 책을 보고 있다며 뿌듯해하는 건축주. 단지 올라가기 조금 불편해 조만간 ’60세 이상 진입 금지’ 푯말을 붙일 예정이라며 웃는다.

 

↑ 현관에서 바라본 복도의 모습. 복도 끝에는 한쪽 벽면에 가득 짜 넣은 책장이 자리한다.

 

↑ 복도 반대쪽에서 현관을 바라본 모습. 좌측에는 데크로 나가는 창이, 우측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이 있다.

 

↑ 2층 서재의 자그만 창을 통해 바라본 부엌과 거실 공간. 작지만 오밀조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 PLAN – 1F

 

↑ PLAN – 2F

 


[INTERIOR SOURCES]

내벽 마감: 실크벽지, 자작나무, 편백나무
바닥재: 강마루(구정마루)
욕실 및 주방 타일: 국산및 수입산
수전 등 욕실기기: INUS
주방 가구: 한샘
조명: 메가룩스 & 룩스몰
계단재: 자작나무
현관문: 성우스타게이트
방문: 자작나무 제작도어

 

↑ 편백으로 마감한 음악실 문을 열어두면 집 안 가득 향이 퍼진다.

 

↑ 책이 가득한 복도의 끝에는 침실이 있다. 왼쪽에는 서고가, 오른쪽에는 픽쳐레일이 있는 아늑한 복도는 건축주의 독서공간이다.

 
집짓기를 탐탁지 않아 했던 부인도 지금은 주택에서의 삶을 만끽한다.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편리할지는 몰라도 이곳엔 풍요로운 자연이 있다. “어때?” 속없이 묻는 남편의 질문에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 중에 최고!”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름날, 외부 데크에 테이블을 펴고 차를 끓여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먹으며 바다의 야경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하다는 부부. “너무 좋아 뿅 갔다”는 표현이 유쾌하다. 두 부부의 낙낙한 삶의 초석이 될 그들만의 아지트다.

 

 

 

출처 – 월간 전원속의 내집

미국에서 가볼 만한 괴상한 집 8곳

[월드리포트] 미국에서 가볼 만한 괴상한 집 8곳

 

CNN은 특집 기사를 통해 미국에서 한번쯤 가볼 만한 ‘괴상한’ 집 8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괴한 집들을 구경해 보겠습니다.

커다란 드럼통 같기도 하고, 비료를 담아두는 저장소 같아 보이지만 위의 사진은 미국 미시간에 있는 집입니다.

만화가 윌리엄 도내히가 1926년에 지었으니까 거의 90년 가까이 된 집이네요.

지금은 한 식품회사가 사들여 여름철 피클 박물관으로 사용했습니다.

도내히 가족에게는 특별히 그 때를 제외하고는 마음 대로 와서 머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2003년에는 ‘미시간 역사와 사회’라는 단체가 사들였고, 지금은 ‘미국 역사적 장소’ 에 등재돼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무료로 이 특이한 집 안에 들어가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일리노이주 워드워스에 있는 이 금빛 피라미드는 건평이 1만7천 스퀘어 피트 (1,580제곱미터)에 달하는 6층짜리 집입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피라미드’에 초자연적인 힘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행처럼 번진 거죠.

짐과 린다 부부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특히 부인 린다는 광적으로 피라미드의 힘을 신봉했던가 봅니다.

당시 평범한 집에 살던 부부의 방과 거실에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 모형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린다가 남편인 짐에게 피라미드 모양의 집을 지어주면 이 모형들을 다 치우겠노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남편이 진짜로 피라미드 모양의 집을 지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일반인에게 10~15달러씩 받고

둘러보게 하고 있다고 하니, 피라미드의 힘이 돈이 되어서 돌아왔는가 봅니다.

 

여기 또 이상한 모양의 집이 있네요. 펜실배니아 있는 구두 모양의 이 집은 실제로 구두 세일즈맨이 지은 겁니다.

높이가 25피트 (7미터) 높이에 48피트 (15미터) 길이의 이 집은 70년 전,

구두 판매상 말론 하이네스가 구두 광고를 목적으로 지어 게스트 하우스로 써 왔다고 합니다.

집 안에 들어가면 5층으로 돼 있는데 방이 3개, 화장실이 2개, 주방과 거실도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6월부터 10월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데 역시 3~4.5달러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네요.

 

이 집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미스터리 하우스입니다. 미국의 유명 총기 회사 ‘윈체스터‘의 상속 녀

사라 윈체스터는 스스로 접신했다고 믿었습니다. 아마도 가끔씩 혼령이 보였나 보죠?

여하튼 그녀는 빅토리아 양식의 이 집을 무려 35년에 걸쳐서 짓게 됩니다.

1919년에 완공된 이 집은 7층 건물에 방만 160개가 있다고 하는데 혼령들을 헷갈리게 만들려고

내부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곳곳에 비밀 통로가 있고 집안에 있는 기둥들은

위와 아래가 거꾸로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 집도 일반인에게 공개되는데 역시 집이 크고

희한한 내부 구조 때문인지 입장료도 24~27달러나 하네요.

 

노스 캐롤라이나에서는 유리로 만든 집이 뽑혔습니다. 사연이 있는데요,

뉴 번스위크에 사는 매리 폴센이라는 여성은 동네에서 버려진 인형을 주워다 고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녀의 집 앞 마당에 이렇게 주워다 고친 인형이 무려 6천 개나 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자기 집에서

쓰지 않는 고물이나 물건 들을 이 매리 집에 가져다 주곤 했는데요, 그 가운데 병들이 유독 많았다고 합니다.

매리는 이 병들을 모아 집 외벽에 장식물로 붙였는데 와인 병부터 매니큐어 병까지 모두 8천 개의 병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는데, 입장은 무료라고 하네요.

다만, 집 앞에 마련된 저금통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보통 통나무 집이라고 하면, 통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통째로 쌓아 올린 집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예 통나무 하나로 만든 집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훔볼트에 사는 아트 쉬먹이라는 남성은

종종 산에 올라가 거대한 나무를 둘러보는 게 취미였는데 미국 중부나 동부에 사는 친척들은

집만큼 큰 나무들이 많다는 쉬먹의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기가 발동한 쉬먹은 이렇게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로 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요,

바로 커다란 통나무를 하나 구해서는 그 안을 파서 집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동네에 함께 사는 친구와 함께 높이 7피트 (2미터) 길이 32피트 (10미터) 되는 통나무 속을 파내는 데만

8개월이 꼬박 걸렸다고 합니다. 그 안에 방과 부엌, 거실을 만든 뒤 통나무에 바퀴까지 달았습니다.

워낙 크다 보니 이 바퀴 달린 통나무 집을 차에 매달고 이동하는데 고속도로 순찰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북부 캘리포니아까지 옮긴 통나무 집은 지금은 101번 고속도로 옆에 자리 잡고

커피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캔 맥주로 만든 집입니다. 텍사스주 휴스턴에 사는 존 밀코비치는 앞 뒷마당을 치우면서

평소 먹고 버린 맥주 캔들을 마당 한 구석에 쌓아놨다고 합니다. 이렇게 쌓인 맥주 캔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는 생각 끝에 이 캔들을 집 외벽을 장식하는데 쓰기로 합니다.

이 집에 들어간 맥주 캔이 무려 5만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의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에도 소개됐다고 하네요.

이 집은 특이하게도 미국 독립기념일부터 노동절까지만 공개된다고 하는데 입장료는 5달러라고 합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절대 이 집에 살 수가 없을 겁니다.

위스콘신 주에는 산등성이 바위 위에 커다란 집이 하나 있는데요, 벽에는 3천 개의 창문이 있어

바위 위 집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그야말로 끝내 준다고 합니다.

이 집은 1945년 알렉스 조단이라는 돈 많은 사업가가 은퇴 후 지었다고 하는데요,

1960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됐는데 집이 워낙 크다 보니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섹션 별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세 섹션을 다 보려면 28달러 50센트나 내야 한다고 하네요.

왜 이렇게 비싸냐고요?

제대로 둘러보려면 3시간 가까이 걸리고, 집에는 269개의 수제 동물 모형으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 목마를 탈 수 있다고도 합니다.    출처  SBS 박병일 기자

작고 겸손해서 더 아름다운 어느 큐레이터의 전원주택

아름다운 집

큐레이터 000님의 작고 겸손한 집 

베이징에서 머물다가 하루 뒤면 상하이 오피스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미국을 거쳐 서울에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정말 숨 돌릴 새 없이 바쁜 큐레이터 김선희. 그녀에겐 평창동의 작고 겸손한 집으로 가는 길이 항상 특별한 경험이다.

정말이지 그녀는 무척 바빴다. 도쿄 롯폰기에 있는 모리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해온 긴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중국 현대미술상 디렉터와 아트 컨설팅을 겸하는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김선희가 평창동의 조그마한 주택을 일부 허물고 개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집 촬영을 욕심 내온 에디터에게 김선희가 베이징에서 보내온 메일은 그녀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로스앤젤레스, 도쿄와 유럽을 오가다 보면 서울에서 머물 수 있는 날은 고작 2~3일에 불과하지만 일부러라도 서울을 꼭 경유한다고 했다. 장거리 비행에서 오는 체력적인 소모를 생각하면, 차라리 다음 도시에 일찍 도착해 여독을 푸는 것이 좋을 텐데도.


한국과 중국, 일본의 느낌이 섞여 있는 갤러리스트 김선희의 작고 겸손한 집 거실 풍경

그녀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도쿄에서는 롯폰기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토라노몬에 살았어요. 사람들은 시내 중심지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신기해했지만, 제가 느끼는 매력은 다른 데 있었죠. 오피스가 많고 아파트가 얼마 없는 동네여서 밤이 되면 조용했고, 공원이 옆에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어요. 뒷골목에는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아침 9시만 되면 에이프런을 두른 주부들이 거리에 빗질을 하며 꽃에 물을 주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어요. 출근길을 바쁘게 서두르는 나와는 다른 세계였죠.” 어떻게 보면 유목민 같은 긴 방랑의 세월을 거쳐 서울에 가지게 된 첫 집이니 평창동 주택이 얼마나 애착이 가는 존재일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쁜 그녀를 자꾸 서울로 끌어당기는 힘은 아마도 ‘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먼 길을 돌아와도 몸을 편히 누일 내 집이 있다는 든든함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벽에 걸린 팝한 추상화 작품은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한순자 작가의 작품.


흰 페인트로 칠한 테라스는 유리 온실 같은 공간으로 건축가 조병수는 말렸지만, 김선희의 고집으로 완성된 곳이다. 벽돌집의 증개축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

슬레이트 블루 컬러로 칠한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빨간 벽돌 굴뚝과 적갈색 지붕이 보이고 그 옆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증축된 집이 나타난다. 얼핏 보이는 작은 규모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 주택은 건축가 조병수와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아트 디렉터 전용성의 힘이 보태진 그야말로 드림팀의 작품이다. 건축가 조병수는 김선희와의 인연을 이유로 설계비도 받지 않은 채 이 집의 리노베이션을 맡아주었다. 1960년대 초 국민주택이었던 평창동의 빨간 벽돌집은 그 당시 100여 채가 지어졌는데, 이제 이 집 하나만 남았다고.


주방 풍경. 철제 선반 위에는 여러 도예가의 생활 자기를 진열했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큐레이터 김선희.

김선희는 이 집이 처음부터 좋았다고 말한다. “무척 오래되고 낡은 집인데도 참 정겨웠어요. 거실보다 낮은 부엌 아궁이와 일어서면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낮은 다락이 있는 구조였어요. 난방은 형편없고 날림으로 지어진 벽돌집이어서 라디에이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요. 철거 공사할 때 보니 옛날 신문이 천장에 붙어 있더군요.”


김선희가 작은 산이라 부르는 뒷마당에서 본 게스트 하우스의 모습.

건축가 조병수와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이 집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집주인 김선희 역시 ‘옛것에 대한 향수’와 ‘앤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집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며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훈은 철거할 때 나온 나무 바닥재를 수거해 테이블과 벤치로 만들었고, 지금은 창문 프레임을 활용한 수납장을 디자인하고 있다. 시공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지만 건축가와 디자이너, 집주인 모두 옛날 것을 유지하겠다는 기본 설계안을 존중했고, 그렇게 완성된 집에는 담백함을 좋아하며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갤러리스트 김선희의 취향이 잘 배어 있다.


1 테이블 위에 올려둔 마리코 모리의 말차용 다기 세트. 무지갯빛 흰색은 그녀가 즐겨 사용한다.
2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이 디자인한 의자 뒤로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미술품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의 벽 선반. 차를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이 여실히 반영된 다기 세트와 허은경 작가의 자개 작품이 보인다.

그녀가 작고 겸손하다 말하는 집의 거실에는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는 크기의 그림에서부터 벽에 기대둔 액자,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설치작품이 뒤섞여 한 컬렉터의 소장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난 소장가가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작품도 우연히 어떤 기회로 지니게 된 것뿐입니다. 아마도 오랜 인연이 있는 작가인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리코 모리의 다기 세트는 모리미술관에서 제작해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어요. 마리코 모리는 일본 사람인데 지금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먼 과거와 먼 미래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프라다 재단과 작업한 드림 템플 프로젝트를 보면 마치 스톤헨지를 연상케 하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전통과 다도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녀의 작업을 꽤 오랜 시간 눈여겨봐 왔죠.


1 옛날 집에서 뜯어낸 바닥재로 만든 테이블.
2 가까운 지인인 오민호 감독이 선물한 김동규 작가의 십자가.


1 침실 반닫이 위에 올려둔 드로잉은 송현숙 작가의 작품.
2 집에서 가장 신경 쓴 공간 중 하나인 욕실.

거실 벽에 건 그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송현숙 작가의 그림입니다. 송현숙 작가는 작품을 내놓는 데 시간이 걸려요. 렘브란트가 했듯 자기 손으로 물감을 만들고 붓도 만드는 여류 화가죠. 이 작품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풀어낸 것이라 하더군요.” 김선희는 애정에 달뜬 목소리로 송현숙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다른 것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어떤 의미와 영감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인데, 그녀가 보기에 송현숙 작가는 삶과 자연, 문명과의 문제를 시적으로 읽어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그 고귀한 정신에 반해 작품을 구입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순자 작가도 빠뜨리면 섭섭하다. 동그란 것에 강박증이 있는 이 여류 화가는 원에 우주적인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사각 욕조에 히노키 나무 프레임을 둘러 목욕을 할 때마다 나무향이 진하게 난다. 세면볼과 욕조, 비데 일체형 양변기 모두 아메리칸 스탠다드(1588-5903, www.americanstandard.co.kr) 제품.


게스트 하우스의 평화로운 코너.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 낮은 창문 밖으로 작은 연못이 보이고, 하지훈의 채상과 쿠션이 놓여 있다.

그녀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전시를 위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은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는 김선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집을 지을 때 송현숙 작가를 떠올렸다.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 쓰임새가 좋지만 화려하지 않고 은근히 세련되면서 소박한 집. 직접 만든 뒷마당의 작은 개울에서 올챙이가 놀고 있고 작은 텃밭과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 화단. 이제 서울에 정착할 마음을 가진 큐레이터 김선희는 그녀가 만난 고귀한 정신을 가진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심플 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


멀리서 그녀를 찾아온 손님이 묵어가고 좋은 차를 마실 수 있으면 족하다는 작은 무릉도원.

 

출처 : 산골전원주택이야기

 

자연과의 조화를 최 우선으로 하는 친환경 생태 한옥

자연과 조화를 이룬 친환경 생태 한옥
가] 한옥이 좋은 이유

1]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상공간 한옥

▲ 자연과의 조화로운 한옥 모습
자연을 관조하며 거기에서 생의 유연함을 배우며 살아왔던 한국인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반드시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도록 집의 방향을 잡으면서도 결코 사치스럽지 않고 궁색스럽지 않은 단정한 집을 지었다. 결국 이런 지형에 맞는 집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삶의 영유와 편안함, 안정감 등을 고려하여 살아가며 풍수에 맞도록 적응해 보이며 뒤로는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과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에 파묻힌 아담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위의 경관요소를 거슬리지 않는 곳에다 주변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 지세에 맞는 형태로 집을 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주위에 산재해 있는 바람, 들, 풀, 그리고 하늘까지도 모든 자연요소를 집안으로 끌어 드렸다. 자연과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서로가 남이 아닌 일체감을 갖는 하나의 완벽한 이상체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함양된 우리의 의식은 집을 지을 때에도 되도록 인공적인 기교나 장식을 피하며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가지고 자연친화적인 편안한 집을 지은 것이며 가령 나무를 쓰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나무둥지에 가지만 잘라내 사용하였으며 주춧돌과 밀착되는 면도 다듬지 않은 상태에 그대로 밀착시킬 정도로 한옥의 가구에서 가장 중요한 대들보마저도 나무가 휘어져 있으면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였을 정도이니 한옥에서는 우리 주위의 자연재료를 가지고 인공을 가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여 한옥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던 것이며 이는 농본 문화적 특성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2] 풍수에 맞게 설계된 살림집의 이상형 한옥
통상 ‘집터’는 들녘을 피해 산기슭에 올라서서 지었다. 산기슭의 집터는 조건이 까다로워 뒷산이 날카로우면 인격 함양에서 심성이 메마르고 단기에 치우친다하며 뒤쪽 산형이 둥글고 너그러우면 덕기가 넘친다고 하여 그런 지형을 택하여 예전부터 우리는 집을 짓기 전에 풍수를 고려했던 것이다. 또한 지형적으로 산사태가 날 자리엔 집터를 잡을 수 없고, 큰물이 쏟아지는 계곡도 마땅치 않아 집은 남향으로 짓는데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 볕이 잘 들며 이런 터전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바람기가 있어 시원하다. 산의 능선 중 어느 한쪽이 낮아 바람이 휘몰아치면 나빠지기에 바람기도 온화해야 한다. 산은 고정되어 있으나 계곡의 물은 항상 흐르고 있어 산이 조건을 만족스럽게 구성하였다 해도 이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으니 따라서 물도 좋아야 하기에 이렇게 고루 갖추어진 터전을 골라 우리는 좋은 ‘집터’ 라고 하며 지어 왔다.
3] 현대건축과는 구별되는 한옥의 실내외 구분
현대 건축에서 문을 닫고 들어서면 실내라 부르고 문을 열고나서면 실외라 하는데 한옥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대청에서 바라보면 기둥들도 독립되어 서 있고 벽체가 없다. 방의 바깥쪽에도 대청에서 이어지는 툇마루가 있는데 툇마루 역시 기둥과 벽체 없이 독립되어 있다. 기둥이 서 있는 선상에서 실내외를 구획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집이 기둥 밖으로 쪽마루가 돌출되어 있어 기둥 서 있는 선을 경계 삼기도 어렵다. 시골집에서는 기둥 밖 처마 아래에 시렁을 매고 광주리나 밥상 등 세간을 얹어 놓아 기둥 밖으로까지 살림터전을 연장시킨다.
실내외를 구분하는 것은 보통, 살림하는 터전을 실내라고 규정지으며 한옥은 안마당에도 우물가에도 살림 도구를 늘어놓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남쪽 지방으로 가면 안마당에 장독대를 설치하고 마당가 우물가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놓는다. 또한 물가에서 씻고 빻고 치는 일들이 일어난다. 안마당이 생활터전이 되는 것이다. 부엌 안에서만 작업하는 방식과는 다르고 추수 때는 곧바로 대문 밖 마당에서 타작한다. 이렇듯 한옥의 생활 터전은 제한이 없을 정도이다.
4] 한옥은 마루와 구들의 절묘한 조합
▲ 마루와 구들의 조합
마루와 폐쇄적인 온돌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구들 들인 온돌방은 벽으로 막아 밀폐시킨 데 비하여 마루의 다락집은 기둥과의 사이를 탁 터놓았다. 벽체가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겨울철이면 장막을 늘어뜨리고 여름이면 발을 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이 현상은 근세에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한옥에서는 마루 들인 부분에서는 기둥과의 사이를 터놓고 살고 있으며 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증대되면 마루 있는 집은 더욱 합리적인 균형을 찾게 된다. 구들의 방과 마루가 적절하게 균제하여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낮은 바닥의 구들 시설인 방의 바닥은 높이하고, 높은 마루의 다락은 키를 낮게 해서 마침내 수평을 이루게 하며 결국 구들과 마루가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된다. 이 높이의 균제에서 한옥은 완성을 추구하게 되며 결국 우리의 한옥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다.
5] 주인의 쓰임새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
쓰임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내에 집을 따로 짓는다. 그중에서도 여러 채의 곳간이 건축되었는데 곳간채는 가을에 거두어들인 많은 양의 벼를 간수하기 위하여 지은 창고로 규모가 크며 습기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고, 쥐 등의 해로운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은 건물이다. 한옥 구성에서 행랑채가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곳간으로 사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몇 칸만으로 만족되다가 그것이 부족하게 되면 필요에 따라 자꾸 증설해 나간다. 행랑채가 안행랑, 중행랑, 바깥 행랑 등으로 증가되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6]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설치

▲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 모습
창은 머름대 위에 설치하며 두 짝 창을 달게 되는데 머름과 그 위에 세운 벽선과 인방이 구조하는 선상에 의하여 완성된다. 창은 주인의 식견과 성정을 잘 나타내는 얼굴이라 여겼기 에 이 부분의 구조에서 주인은 각별한 주의를 경주하였고 자기 식견을 드러내려 하였다.
창의 기본구조에서 그 설치 기준을 인체에 두었는데 머름대 높이를 앉은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에 들도록 하며 가슴팍이 남실거리며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머름대의 높이는 문갑 등 실내 가구 제작에서 높이를 제한하는 절대 기준치가 되었으며 이러한 머름대가 있음으로 해서 방 안에 앉은 이는 안정감을 얻는다.
창은 바깥의 띠살무늬 덧문만 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 명장지의 미닫이와 맹장지의 갑창을 달기도 한다. 미닫이를 열면 두껍닫이 속에 묻혀서 창을 통하여 내다보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부자 집이나 격조를 따지는 집에서는 명장지 다음에 갑사천을 바른 사창을 하나 더 달기도 하는데 갑사는 현대의 방충망만큼이나 얇아 투명하며 통풍도 가능하여서 여름철에 시원하게 지내는 데 유익하다. 창살의 무늬 구성에도 유념하였고 두껍닫이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 등을 써서 붙이고 바라보며 즐겼다. 이 두껍닫이는 전시용 벽면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7] 한옥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방의 넓이를 결정
▲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한옥의 방넓이 모습
방에 들어앉았을 때 아늑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방이 안정감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 사람은 자기 몸을 기준으로 삼아 통상 안정감을 고려하는데 방의 넓이는 보통 한 변이 4.5m[15척]이었다. 형편이 좋아진다면 5.4m[18척] 넓이로 정할 수도 있고 신분이 높아지면 6.3m[21척]이나 7.2m[24척] 사방 넓이의 방에 살 수도 있었다. 4.5m[15척] *4.5m[15척]의 방 중앙에 사람이 앉았을 때 2.25m[7.5척]씩 간격이 좌우와 전후에 생겨난다. 여기에서 2.25m[7.5척]은 한국 사람들의 평균 신장 1.5m[5척]과, 앉은키의 눈높이까지의 평균치 0.75m[2.5척]이 합쳐진 것이다. 평면뿐만 아니라 입면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방의 천장 높이를 보통 2.25m[7.5척]으로 잡는데 이는 앉은 키위에 서 있는 사람 한 길을 합한 수치이다. 방안에서 아랫목에 앉아 보면 방의 출입문은 대청에 있다. 마당에서 들여다보이는 앞 퇴마루에 면한 벽과 그 뒷벽엔 창만 설치한다. 대청에 면한 출입문은 세 짝, 네 짝, 여섯 짝이나 여덟 짝으로 만들어 단다. 가난한 집에서는 외짝 문을 달기도 하는데 외짝을 만든 것은 대청과 방 사이의 담벼락을 붙박이로 고정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외짝문은 아랫도리에 얇은 나무판자를 대고 그 위에는 살대로 무늬를 만들어 얇은 창호지를 바른다. 세 짝 이상의 문은 안팎으로 두껍게 바른다. 벽체와 같은 질감을 만들려는 것이다. 아랫목에 앉아 바라다보는 곳이 허하면 왠지 불안해지므로 아늑하게 꾸미려 창을 내었다. 이것을 불발기창이라 한다. 창의 살대 안쪽에 창호지를 발라 광선을 받는다. 불발기창은 문의 중간쯤에 설치되며 설치되는 기준선이 그 밑선 인데 이 선의 높이는 앉은 사람의 눈의 높이와 같도록 한다.
8] 기[氣를] 고려한 한옥의 대청마루

▲ 대청마루 모습
대청마루의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서까래는 지붕의 빗물받이 물매에 따라 30도에서 60도 사이의 각도로 걸리게 되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중심부가 높게 구조되고 좌우로 경사지게 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 중심부가 가장 높은 자리를 3m[10척]으로 잡았으며 한국 사람의 평균 신장이 5척이므로 마루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한 길이 되는 여유를 두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이 내뿜는 기는 하늘로 뻗치게 되어 억압되지 않은 채로 기가 승하여 의기양양한 인격으로 함양된다고 하여 평면과 입면설정에 이런 점을 유의하였던 것이다. 출처 : 산골전원주택이야기

건축 초보 통나무집 짓는 세남자 이야기

생태건축가의 생태건축이야기

건축 초보 세 남자의 좌충우돌 통나무 집짓기

홀로 두 달 만에 통나무집을 뚝딱 지은 국중모 씨,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각각 다른 방식으로 통나무집을 짓고 있는 진상돈, 정우상 씨. 같은 통나무집이지만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게 담긴, 건축 초보 세 남자의 좌충우돌 집짓기 이야기가 펼쳐진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아담한 통나무집이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모인 세 남자 에게 집 짓는 이야기를 들으러 간 참이다. 굽어보는 산세가 절경인 마당의 정자에 둘러앉았다.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마치 신선놀음하는 기분이다.

“저희 셋은 집 짓다 친해진 사이예요.”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묻자 중모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집을 지은 중모 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웃인 두 사람의 집짓기를 돕고, 상돈 씨와 우상 씨는 서로의 현장에 품앗이하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그렇게 통나무집을 짓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생면부지의 세 남자가 만나 친구가 됐다. 사실 세 남자는 건축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인데 말이다.

세 사람 집은 모두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겉보기에는 세 채 모두 비슷한 통나무집인 것 같아도, 짓는 이를 닮아 그런지 자세히 보면 저마다 다르다. 집을 앉힌 자리만 봐도 그렇다. 꽤 깊은 산 중턱에 있는 중모 씨의 집과 달리, 우상 씨의 집은 큰 도로변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상돈 씨의 집은 뜻을 함께하는 20가구가 모인 집터에 자리 잡았다.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세 사람의 집이 점점 더 궁금해질 즈음, 중모 씨가 내어온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 한창 벽체를 올리는 중인 우상 씨네 집

↑ 중모 씨가 만든 그네 너머로 보이는 통나무집


국중모 씨 _ “내 한 몸 누일 작은 통나무집이면 되지요”

중모 씨는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통나무집을 지었다. 인천에서 타이어 대리점, 오디오 전문점, 카센터 등을 하던 그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2012년 3월, 이곳 평창에 땅부터 덜컥 계약했다.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는데, 오직 제 고집으로 주말주택 삼아 내려왔어요. 집안 어른들은 ‘네가 무슨 집을 짓느냐’며 걱정도 많이 하셨죠.”

그러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의 그는 같은 해 5월 집짓기에 착수해 단 두 달 만에 집을 지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밤 9시까지 쉬지 않고 작업했다. “나는 하루에 4시간 일하자는 주의인데, 형님과 일하다 보면 좀 쉬자고 할 수밖에 없더라”는 상돈 씨의 증언이 이어진다. 기초 콘크리트 타설, 전기설비 등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통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그라인더로 표면을 손질할 때는 아들, 딸이 틈틈이 와서 도왔다. 12자(약 3.6m) 길이의 통나무를 혼자 들어 올리기 어려워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둘이서 벽체를 쌓고 지붕을 마무리했다. 그러기를 두 달, 12평의 아담한 통나무집 한 채가 뚝딱 만들어졌다. 그가 집 짓는 데 쓴 돈은 3천5백만원이다.

“집이 작기도 작지만, 구조도 복잡할 게 없어서 더 쉽게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 다락이 전부거든요. 딱 필요한 공간만 있으니까 유지비도 적게 들고, 겨울엔 난방을 조금만 해도 금방 훈훈해져요.”

한데, 마당을 가꾸며 집 주변을 정리하고 3평짜리 찜질방을 완성하기까지는 1년도 더 걸렸다. 트럭도 없이 SUV 자가용만으로 작업하느라 벽돌 등의 자재를 조금씩 사다 나르고, 강가에서 대야 한가득 돌을 주워와 마당과 찜질방 외관을 장식했다. 힘은 들지만, 매일 아침 새소리를 듣고 평상에 앉아 음악을 즐기며 사는 삶이 이를 모두 잊게 한다.

↑ 평소 음악을 즐긴다는 중모 씨

↑ 세 남자의 모임 현장. 중모 씨는 직접 만든 정자에 오디오와 스피커도 설치했다.


진상돈 씨 _ “저에겐 집짓기가 놀이예요”

이제 막 통나무집의 지붕을 올린 상돈 씨. 그 역시 카센터를 운영한 경력이 있고,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재활용 목재로 가구를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에 몸담았다. 그리고 약 1년 전, 20가구가 모여 산 땅에서 가장 먼저 집짓기를 시작했다.

단출한 중모 씨의 집과 달리, 이 집은 25평의 널찍한 면적에 2층이나 다름없는 다락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하자 마음먹은 그는 기초공사를 위한 거푸집도 직접 짜고 철근도 손수 묶었다. 나무를 다듬어 벽체를 올리고 지붕을 얹는 것은 물론, 창틀 제작과 전기배선공사도 직접 했다. 마침 건설기계 면허가 있어 포클레인을 한 달 임대해 직접 운전하며 작업하기도 했다. 이로써 얻는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 ‘건축비 절감’이지만, 그의 더 깊은 속내는 따로 있었다.

“제 아버지나 할아버지 시절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지었지만, 지금은 기술자, 전문가가 맡아서 하죠. 그러다 보니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내로라하는 장인들도 처음엔 다 시행착오를 거치잖아요. 집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지으며 실수도 하고 이를 바로잡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집을 지으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단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나무 벽체 안쪽에 투습방습지를 붙이고, 2×4 목재로 경량목구조처럼 다시 구조를 세워 단열재를 채워 넣었다. 2중 벽체인 셈이다. 온돌방으로 계획 중인 방 한 개는 구들과 온수관을 같이 깔았다. 바닥에 황토벽돌을 깔고 그 사이로 온수관을 배열해 두 가지 난방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레고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 같아요. 아직 서울에 있는 아내가 주말마다 내려와서 도와주곤 하는데,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재미에 성취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집의 하나부터 열까지 도맡아 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단번에 ‘재밌다’고 대답한다. 딱히 작업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즐기며 집을 짓는다고. 아내의 갑작스러운 설계변경 요청에도 웃으며 응할 수 있는 건, 그에게 집짓기가 곧 ‘놀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 상돈 씨는 모든 나무를 직접 손으로 다듬는다.

↑ 조금씩 형태를 갖춰 가는 상돈 씨의 통나무집

↑ 온돌방 바닥에 황토벽돌을 깔았다. 벽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온수관을 배열할 계획이다.


정우상 씨 _ “내 마음대로 짓고 집을 누리며 살기”

싱글남 우상 씨는 늘 나이가 들면 전원생활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준비 차 통나무집 짓기, 구들 놓기 등의 교육도 다수 받았다. 그러다 귀촌 시기를 조금 앞당기게 된 것은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그는 작년, 서울에서 강원도 횡성으로 내려왔다.

형님들을 따라 지금 한창 통나무집의 벽체를 올리고 있는 그는 귀촌한 지 1년쯤 지난 올해 4월, 집짓기를 시작했다. 집 지을 자리 몇 군데를 가까이서 지켜본 뒤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땅은 큰 도로에서 멀지 않되 마을과는 떨어져 있고 마당의 활용도가 높은 대지였다. 지금은 현장 바로 옆 컨테이너에서 숙식하며 집을 짓고 있다.

“우상 씨는 원래 흙부대 공법으로 집을 지으려고 했어요. 저희 집 현장에서 몇 달 일하다 보니 통나무집이 낫겠다 싶어서 마음을 바꾸게 된 거죠.”

상돈 씨의 말에 그는 ‘지으면서도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것’이 통나무집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에게 통나무집이 단열에 취약하다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공법에나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감수할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덧붙인다.

대신 단열을 보완하기 위해 형님들보다 더 굵은 나무를 써서 벽체를 두껍게 만들었다. 또, 둥근 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통나무 사이의 틈을 최소화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마르면서 갈라지거나 틈이 벌어질 수 있지만, 나무로 지은 집에서 성실한 유지관리는 필수다. 난방 시스템으로는 러시아 난로 ‘페치카’와 원리가 비슷한 ‘벽난로 구들’을 들일 계획이다. 직접 만들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구들은 공부하면 할수록 잘해낼 확신이 없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제 나이가 오십인데,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계는 60살이라고 생각해요. 그때쯤이면 집도 어느 정도 자리 잡을 테니, 많이 움직이지 않고 살 생각입니다(하하).”

↑ 통나무를 다듬는 작업 중인 우상 씨

↑ 그는 집을 짓기 전, 계획한 집의 형태를 모형으로 몇 개 만들어 두었다.

↑ 집을 지으며 숙식하고 있는 컨테이너

↑ 현장에서 시공에 관한 얘기가 한창인 중모 씨와 우상 씨

함께 집짓기 현장을 둘러보던 중모 씨가 “제일 먼저 집을 짓는 바람에 좋은 정보는 동생들만 얻게 됐다”며 투정 어린 농담을 한다. 같이 허허 웃던 두 남자는 이내 작업에 필요한 집짓기 자재나 시공법에 관한 이야기에 몰두한다.

우연히 중모 씨의 집을 찾은 한 건축가가 “선생님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지은 것이 참 좋다”고 했다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직접 짓는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시공자들과 승강이 벌일 일도 없고, 정해진 기한이 없어 마음대로 쉬다 오거나 볼일을 볼 수도 있으니 ‘집 짓다 10년 먼저 늙는다’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흐르는 바람을 따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짓는 세 남자의 통나무집에서 꼭 그들만의 향내가 난다.

↑ 산자락에 폭 안겨 있는 중모 씨의 통나무집 전경

출처 :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