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조화를 최 우선으로 하는 친환경 생태 한옥
자연과 조화를 이룬 친환경 생태 한옥
가] 한옥이 좋은 이유
▲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 모습
▲ 대청마루 모습
1]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상공간 한옥
▲ 자연과의 조화로운 한옥 모습
자연을 관조하며 거기에서 생의 유연함을 배우며 살아왔던 한국인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반드시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도록 집의 방향을 잡으면서도 결코 사치스럽지 않고 궁색스럽지 않은 단정한 집을 지었다. 결국 이런 지형에 맞는 집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삶의 영유와 편안함, 안정감 등을 고려하여 살아가며 풍수에 맞도록 적응해 보이며 뒤로는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과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에 파묻힌 아담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위의 경관요소를 거슬리지 않는 곳에다 주변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 지세에 맞는 형태로 집을 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주위에 산재해 있는 바람, 들, 풀, 그리고 하늘까지도 모든 자연요소를 집안으로 끌어 드렸다. 자연과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서로가 남이 아닌 일체감을 갖는 하나의 완벽한 이상체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함양된 우리의 의식은 집을 지을 때에도 되도록 인공적인 기교나 장식을 피하며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가지고 자연친화적인 편안한 집을 지은 것이며 가령 나무를 쓰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나무둥지에 가지만 잘라내 사용하였으며 주춧돌과 밀착되는 면도 다듬지 않은 상태에 그대로 밀착시킬 정도로 한옥의 가구에서 가장 중요한 대들보마저도 나무가 휘어져 있으면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였을 정도이니 한옥에서는 우리 주위의 자연재료를 가지고 인공을 가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여 한옥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던 것이며 이는 농본 문화적 특성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2] 풍수에 맞게 설계된 살림집의 이상형 한옥
통상 ‘집터’는 들녘을 피해 산기슭에 올라서서 지었다. 산기슭의 집터는 조건이 까다로워 뒷산이 날카로우면 인격 함양에서 심성이 메마르고 단기에 치우친다하며 뒤쪽 산형이 둥글고 너그러우면 덕기가 넘친다고 하여 그런 지형을 택하여 예전부터 우리는 집을 짓기 전에 풍수를 고려했던 것이다. 또한 지형적으로 산사태가 날 자리엔 집터를 잡을 수 없고, 큰물이 쏟아지는 계곡도 마땅치 않아 집은 남향으로 짓는데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 볕이 잘 들며 이런 터전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바람기가 있어 시원하다. 산의 능선 중 어느 한쪽이 낮아 바람이 휘몰아치면 나빠지기에 바람기도 온화해야 한다. 산은 고정되어 있으나 계곡의 물은 항상 흐르고 있어 산이 조건을 만족스럽게 구성하였다 해도 이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으니 따라서 물도 좋아야 하기에 이렇게 고루 갖추어진 터전을 골라 우리는 좋은 ‘집터’ 라고 하며 지어 왔다.
3] 현대건축과는 구별되는 한옥의 실내외 구분
현대 건축에서 문을 닫고 들어서면 실내라 부르고 문을 열고나서면 실외라 하는데 한옥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대청에서 바라보면 기둥들도 독립되어 서 있고 벽체가 없다. 방의 바깥쪽에도 대청에서 이어지는 툇마루가 있는데 툇마루 역시 기둥과 벽체 없이 독립되어 있다. 기둥이 서 있는 선상에서 실내외를 구획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집이 기둥 밖으로 쪽마루가 돌출되어 있어 기둥 서 있는 선을 경계 삼기도 어렵다. 시골집에서는 기둥 밖 처마 아래에 시렁을 매고 광주리나 밥상 등 세간을 얹어 놓아 기둥 밖으로까지 살림터전을 연장시킨다.
실내외를 구분하는 것은 보통, 살림하는 터전을 실내라고 규정지으며 한옥은 안마당에도 우물가에도 살림 도구를 늘어놓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남쪽 지방으로 가면 안마당에 장독대를 설치하고 마당가 우물가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놓는다. 또한 물가에서 씻고 빻고 치는 일들이 일어난다. 안마당이 생활터전이 되는 것이다. 부엌 안에서만 작업하는 방식과는 다르고 추수 때는 곧바로 대문 밖 마당에서 타작한다. 이렇듯 한옥의 생활 터전은 제한이 없을 정도이다.
4] 한옥은 마루와 구들의 절묘한 조합
▲ 마루와 구들의 조합
마루와 폐쇄적인 온돌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구들 들인 온돌방은 벽으로 막아 밀폐시킨 데 비하여 마루의 다락집은 기둥과의 사이를 탁 터놓았다. 벽체가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겨울철이면 장막을 늘어뜨리고 여름이면 발을 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이 현상은 근세에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한옥에서는 마루 들인 부분에서는 기둥과의 사이를 터놓고 살고 있으며 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증대되면 마루 있는 집은 더욱 합리적인 균형을 찾게 된다. 구들의 방과 마루가 적절하게 균제하여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낮은 바닥의 구들 시설인 방의 바닥은 높이하고, 높은 마루의 다락은 키를 낮게 해서 마침내 수평을 이루게 하며 결국 구들과 마루가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된다. 이 높이의 균제에서 한옥은 완성을 추구하게 되며 결국 우리의 한옥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다.
5] 주인의 쓰임새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
쓰임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내에 집을 따로 짓는다. 그중에서도 여러 채의 곳간이 건축되었는데 곳간채는 가을에 거두어들인 많은 양의 벼를 간수하기 위하여 지은 창고로 규모가 크며 습기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고, 쥐 등의 해로운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은 건물이다. 한옥 구성에서 행랑채가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곳간으로 사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몇 칸만으로 만족되다가 그것이 부족하게 되면 필요에 따라 자꾸 증설해 나간다. 행랑채가 안행랑, 중행랑, 바깥 행랑 등으로 증가되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6]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설치
▲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 모습
창은 머름대 위에 설치하며 두 짝 창을 달게 되는데 머름과 그 위에 세운 벽선과 인방이 구조하는 선상에 의하여 완성된다. 창은 주인의 식견과 성정을 잘 나타내는 얼굴이라 여겼기 에 이 부분의 구조에서 주인은 각별한 주의를 경주하였고 자기 식견을 드러내려 하였다.
창의 기본구조에서 그 설치 기준을 인체에 두었는데 머름대 높이를 앉은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에 들도록 하며 가슴팍이 남실거리며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머름대의 높이는 문갑 등 실내 가구 제작에서 높이를 제한하는 절대 기준치가 되었으며 이러한 머름대가 있음으로 해서 방 안에 앉은 이는 안정감을 얻는다.
창은 바깥의 띠살무늬 덧문만 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 명장지의 미닫이와 맹장지의 갑창을 달기도 한다. 미닫이를 열면 두껍닫이 속에 묻혀서 창을 통하여 내다보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부자 집이나 격조를 따지는 집에서는 명장지 다음에 갑사천을 바른 사창을 하나 더 달기도 하는데 갑사는 현대의 방충망만큼이나 얇아 투명하며 통풍도 가능하여서 여름철에 시원하게 지내는 데 유익하다. 창살의 무늬 구성에도 유념하였고 두껍닫이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 등을 써서 붙이고 바라보며 즐겼다. 이 두껍닫이는 전시용 벽면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7] 한옥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방의 넓이를 결정
▲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한옥의 방넓이 모습
방에 들어앉았을 때 아늑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방이 안정감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 사람은 자기 몸을 기준으로 삼아 통상 안정감을 고려하는데 방의 넓이는 보통 한 변이 4.5m[15척]이었다. 형편이 좋아진다면 5.4m[18척] 넓이로 정할 수도 있고 신분이 높아지면 6.3m[21척]이나 7.2m[24척] 사방 넓이의 방에 살 수도 있었다. 4.5m[15척] *4.5m[15척]의 방 중앙에 사람이 앉았을 때 2.25m[7.5척]씩 간격이 좌우와 전후에 생겨난다. 여기에서 2.25m[7.5척]은 한국 사람들의 평균 신장 1.5m[5척]과, 앉은키의 눈높이까지의 평균치 0.75m[2.5척]이 합쳐진 것이다. 평면뿐만 아니라 입면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방의 천장 높이를 보통 2.25m[7.5척]으로 잡는데 이는 앉은 키위에 서 있는 사람 한 길을 합한 수치이다. 방안에서 아랫목에 앉아 보면 방의 출입문은 대청에 있다. 마당에서 들여다보이는 앞 퇴마루에 면한 벽과 그 뒷벽엔 창만 설치한다. 대청에 면한 출입문은 세 짝, 네 짝, 여섯 짝이나 여덟 짝으로 만들어 단다. 가난한 집에서는 외짝 문을 달기도 하는데 외짝을 만든 것은 대청과 방 사이의 담벼락을 붙박이로 고정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외짝문은 아랫도리에 얇은 나무판자를 대고 그 위에는 살대로 무늬를 만들어 얇은 창호지를 바른다. 세 짝 이상의 문은 안팎으로 두껍게 바른다. 벽체와 같은 질감을 만들려는 것이다. 아랫목에 앉아 바라다보는 곳이 허하면 왠지 불안해지므로 아늑하게 꾸미려 창을 내었다. 이것을 불발기창이라 한다. 창의 살대 안쪽에 창호지를 발라 광선을 받는다. 불발기창은 문의 중간쯤에 설치되며 설치되는 기준선이 그 밑선 인데 이 선의 높이는 앉은 사람의 눈의 높이와 같도록 한다.
8] 기[氣를] 고려한 한옥의 대청마루
▲ 대청마루 모습
대청마루의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서까래는 지붕의 빗물받이 물매에 따라 30도에서 60도 사이의 각도로 걸리게 되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중심부가 높게 구조되고 좌우로 경사지게 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 중심부가 가장 높은 자리를 3m[10척]으로 잡았으며 한국 사람의 평균 신장이 5척이므로 마루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한 길이 되는 여유를 두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이 내뿜는 기는 하늘로 뻗치게 되어 억압되지 않은 채로 기가 승하여 의기양양한 인격으로 함양된다고 하여 평면과 입면설정에 이런 점을 유의하였던 것이다. 출처 : 산골전원주택이야기
이 구조에서 중심부가 가장 높은 자리를 3m[10척]으로 잡았으며 한국 사람의 평균 신장이 5척이므로 마루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한 길이 되는 여유를 두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이 내뿜는 기는 하늘로 뻗치게 되어 억압되지 않은 채로 기가 승하여 의기양양한 인격으로 함양된다고 하여 평면과 입면설정에 이런 점을 유의하였던 것이다. 출처 : 산골전원주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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