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웃긴 집,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에서 가장 웃긴 집, 이렇게 탄생했다
‘반쯤 미친 건축가’를 찾는 건축주
2006년,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 고기웅은 다니던 건축사무소를 나와 자기 사무소 고기웅사무소를 차려 독립한다. 자기 집이 새파란 건축가의 데뷔작이 되기를 바라는 건축주는 드문 법. 그래서 대부분 건축가의 첫 건축주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또는 아는 사람들이 다리를 놔준 이들이 되기 마련이다.
고기웅씨 역시 그랬다. 후배가 자기 지인을 소개해 데뷔작을 설계했다. 그런데 그 소개가 좀 묘했다. 어느 날 걸려온 후배의 전화 내용은 이랬다. “제 친척이 집을 설계할 건축가를 찾는데, 반쯤 ‘미친’ 건축가를 원한대요. 한번 만나 보실래요?”
물론 후배는 그가 ‘미친 건축가’여서 소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지 몰라도 독특한 건축주임에는 분명했다. 고씨는 후배가 소개한 건축주를 만났다.
그 건축주는 예상 이상으로 독특한 이였다.
저희 집을 화장실 변기 모양으로 지어주세요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한가지였다. 집을 화장실 변기 모양으로 지어달라는 것. 왜 하필 화장실이었을까?
건축주는 대단한 유명인사였다. 민선 수원시장을 두차례 지낸 고 심재덕(1939~2009) 국회의원이었다. 심재덕 전 의원은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깨끗하고 멋진 화장실이 도시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그는 화장실 문화 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 1999년 그는 한국화장실협회를 만들었고, 2007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를 만들어 자신이 초대 회장이 됐다. 그리고 자기 집도 화장실 모양으로 짓기로 결심한다. 주변에 건축가를 물색했고, 거기에 고기웅씨가 연결된 것이다.
정말 세상에 다시 없을 의뢰를 받은 고씨는 세계 각국의 변기 모양을 검색해보고 온갖 구상을 한 뒤 설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7년, 드디어 세상에 다시 없을 집이 완성됐다. 정말 변기 모양의 집이었다.
집 이름도 정말 화장실협회장다웠다. ‘해우재’. 변소를 ‘근심을 푸는 곳’이란 운치 있는 이름 ‘해우소’로 불렀던 전통 명칭에서 따왔다. 집은 변기모양처럼 곡선이 넘쳤고, 변기처럼 하얬다.
디자인의 압권은 지붕 위. 정확히 변기 모양이 적용되었고, 엉덩이 받침 모양 가운데는 옥상 정원으로 꾸몄다. 그러나 이 집의 진정 독특한 점은 내부에 있다. 먼저, 내부를 보자.
넓은 전면 유리로 시공되어 냉난방엔 엄청난 약점이 있지만 이렇게 조명이 들어오면 집은 무척 멋져진다.
1층은 이렇고, 2층은 아래와 같다.
집 내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화장실. 화장실 모양 집이니 집 안에서도 화장실이 무척 강조되어야 했다.
이 집이 독특하다고 한 것은 집 정 가운데에 화장실이 위치한 점이다. 1층 화장실.
화장실이 집의 중심에 오브제처럼 독립되어 자리 잡고 있다. 미스터 화장실의 집이자, 훗날 화장실 박물관으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둔 설계였다. 물론, 저렇게 화장실을 중간에 두고 그 외피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싸느라 시공비는 일반 화장실보다 훨씬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화장실이 집 가운데에 다소곳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화장실 안이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최첨단 신기술을 숨겨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하얗고 깨끗한, 가장 충실한 화장실이다.
이런 이상한 집을 지었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07년 해우재는 문을 열었고, 해외토픽에 난리가 난다. 정말 희한한 집이었지만 어찌됐든 고기웅씨의 데뷔작은 그 목적에 최대한 충실한 건축물이었다.
그럼 해우재를 좀 더 살펴보자.
역시 이 집 최고의 포인트는 변기모양 옥상일 듯.
안방 창문 앞쪽을 경사진 녹지로 처리했다. 지금은 관리가 어려워 인조잔디가 깔렸다고 한다.
해우재를 짓고 1년여 년 뒤, 2009년 1월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전 의원은 세상을 떠난다. 그는 이 묘한 화장실집을 수원시에 기증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지 600평이 넘고 집 크기가 100평쯤 되는 20억원대의 해우재를 기증했다.
지금 이 건물은 화장실 문화전시관으로 쓰이며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화장실에 바친 화장실 건물은 한국 수원의 명물이 됐다. 건물 외관은 좀 바뀌어 옥상 난간 부분에는 만국기가 걸렸지만 내부는 거의 그대로다.
싱크대 상판으로 집을 지으면 안 될까?
저 해우재를 지을 때 고기웅 건축가가 고민했던 것이 있었다. 건물의 새하얀 외관을 인조대리석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조대리석은 보통 싱크대 상판으로 쓴다. 간혹 건물 내부 치장에 쓰기도 한다. 그러나 외장재로 쓰는 법은 없었다. 인조대리석은 햇빛을 받으면 변색이 되는 약점이 있는데, 하얀색으로 하면 탈색이 되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시도해 볼만은 했다. 그러나 시공 사례가 없었고, 외부에 노출되었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한 자료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이디어로만 그치고 만다.
그랬던 인조대리석을 최근 고씨는 실제 집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다. 바로 이 집이다.
이 집은 요즘 고급 단독주택들이 몰려드는 판교 단독주택 단지 안에 있는 집이다.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경연장 같은 이 동네에서 단연 튀는 집이 됐다. 저 하얀 외벽이 인조대리석이다. 사진은 완공 직후인 지난해 하반기 모습.
이 집을 설계할 때 고씨는 건축주인 부부에게 외장재를 고르라고 세 가지 재료를 제시했다. 하나는 나무, 또 하나는 벽돌,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인조대리석이었다. 물론 인조대리석을 집어넣은 것은 고씨가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선택은 어디까지나 집에서 살게 될 건축주에게 맡기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건축주 부부는 인조대리석을 골랐다. 개성적이고 남들과 다른 집을 원해서였다. 그래서 예상 못 했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다. 국내 최초로 인조대리석을 외장재로 쓴 집이 탄생한 것이다.
인조대리석은 다른 재료보다 가공성이 좋다. 그래서 창문 부분이 부드럽게 곡선으로 돌출되고, 꼭대기 부분에 네모 구멍을 내는 등의 새로운 디자인 적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진짜 매력적인 공간은 오히려 내부일 것이다. 건축주 가족들의 생활 패턴과 동선에 맞춰 층높이가 다른 집보다 더 다양하게 설계했고, 그래서 좀 더 입체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외부와 내부가 모두 새하얀 집이어서 해우재와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교해보시라.
이 집의 진짜 주인인 아이들 방.
방 안에 아이들이 좀 더 공간을 활용해 놀 수 있게 처리했다. 그리고 작은 미끄럼틀도.
이 판교 주택은 분명 호오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집이다. 너무 튄다, 저게 뭐냐는 의견과 신선하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극과 극이다. 물론 둘 다 진실이고, 둘 다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늘 더 새롭고 더 좋은 방안이 없는지 고민하는 이들이다.
굳이 저렇게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맞다. 그렇지만, 늘 하던대로 무난하고 뻔한 것만 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 건축가라면, 그리고 젊은 건축가라면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금이라도 진화한 건축을 하기 마련이다.
집이란 것은 다른 건축물과 달라 건축주 개인의 취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건축이다. 고씨의 두 작품 해우재와 판교주택은 건축주들의 의견이 디자인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 프로젝트들이다. 두 작품을 보는 여러분의 취향은 크게 엇갈리겠지만 분명 새로운 시도가 들어간 새로운 건축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둘 다 모두 재미있는 집이란 것도.
고기웅사무소의 다른 프로젝트들 구경하기
이제 서른일곱, 건축가로서 한창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인 고기웅사무소는 요즘 건축계에서 주목받는 곳이다. 아직까지 연륜이 짧아 이뤄진 프로젝트보다는 이뤄지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많지만 흥미롭고 독특한 것들이 많다. 고기웅씨가 해온 그동안의 주요 프로젝트들을 모아봤다.
서울 남산 케이블카 정류장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실현되지는 못했다. 건물을 산뜻하게 바꾸고 옥상을 카페로 하려는 구상.
지하 상수도관 등으로 쓰는 네모난 콘크리트 파이프를 확대해 유닛으로 활용하는 리조트 디자인 시안. 건축은, 지어진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면상으로만 남는 ‘페이퍼 아키텍처’도 엄연한 건축이다.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는 온갖 제약과 현실적 요건으로 변형될 수밖에 없는 실제 지어진 건축물보다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한 가상의 건물에서 더 도드라진다. 한국의 차세대 젊은 건축가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계속 진화되고 현실화되어 우리의 삶터를 좀 더 재미있고 편리하게 꾸며주길 기대해본다.
글 / 구본준 기자, 사진 / 김용관 건축전문사진가/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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