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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학년도 한양건축평생교육원 건축역사기행 및 건축문화 탐방

작성자
sacollege
작성일
2016-03-31 16:56
조회
741
2016학년도 한양건축평생교육원 건축역사기행 및 건축문화 탐방
주관 : 한양건축평생교육원 학생회
후원 : 한양건축평생교육원

■ 일정 : 2016년 4월 4일 ~ 5일(1박 2일)
■ 대상 : 한양건축평생교육원 재학생
■ 출발 : 본원 집결 차량이동(오전 9시)
■ 숙소 : 그랜드팬션(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2029번길 11-101/ 032-937-5684)

강화도 역사기행 건축문화 탐방「성공회 강화성당」을 가다! 
1981년 7월 1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변경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이며, 성공회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이다.[자료인용]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측면 동서길이 10칸, 정면 남북길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한식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서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 해다가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배치한 외부공간의 구성이 불교사찰의 구릉지가람(丘陵地伽藍)과 비슷하며,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듯하다.1910년대까지 강화 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 제국은 식민통치 말기인 1943년 대동아전쟁 수행을 위해 국민총동원령과 더불어 전쟁물자 공출을 이유로 강화읍교회의 정문 계단 난간과 종을 강제로 압수했습니다. 한일성공회의 교류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일본성공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은 과거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을 참회하고,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동아시아의 평화 공존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한 2010년 11월, 강화읍교회 축성 110년주년 기념일에 정문 계단 난간을 복원하여 봉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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